조선시대 여성의 놀이, 널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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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설날이 다가오면 마을 곳곳에서는 널뛰기를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온몸을 쭉 펴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지는 널뛰기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놀이입니다. 그런데 이 널뛰기가 예전에는 주로 여성들이 즐기던 놀이였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널뛰기가 왜 남성보다는 여성들의 놀이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널뛰기는 왜 여성들의 놀이였을까?
조선시대는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사회였습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말처럼,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활동 공간은 엄격하게 분리되었죠. 특히 여성들은 집 밖으로 자유롭게 다니기 어려웠습니다.
외출할 때조차 얼굴을 가려야 했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답답한 환경 속에서 널뛰기는 여성들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외부 활동이자, 숨통을 트는 해방구였습니다. 널을 타고 높이 뛰어오르면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담장 밖 세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고, 답답했던 마음을 시원하게 풀 수 있었죠.
일각에서는 널뛰기가 옥에 갇힌 남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부인들이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널뛰기는 단순히 놀이를 넘어, 당시 여성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행위였던 셈입니다.
널뛰기에 담긴 주술적 의미
널뛰기는 놀이 이상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널뛰기를 하면 일 년 내내 발에 가시가 박히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었고, 처녀들이 널을 많이 뛰면 시집가서 순산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이는 널뛰기가 여성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행위였음을 보여줍니다.
현대의 널뛰기
시대가 변하면서 널뛰기는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놀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널뛰기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놀이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